2019. 5. 25. 19:39ㆍ카테고리 없음
- 이언적 옥산서원
옛문화답사회 11월 12일 답사지, 경주 옥산서원 입니다. 옥산玉山서원은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옥산서원사적 154호
독락당.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 여주이씨는 고려시대에 여주驪州의 호족이었던 집안이었죠. 고려가 망하자 개성에서 경주로 이동 성동이언적의 독락당과 옥산서원
안강읍 옥산마을 중앙에 위치한 옥산서원은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웠다. 안강평야의 서쪽 자옥산 아 서원 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옥산서원
논변의 사상가 장서 보유로 증명 정윤수 문화평론가 회재 이언적의 옥산서원. 퇴계 이황은 시 한서암에서 이렇게 쓴다. “띠 엮어 수풀집 지으니 아래 이언적 옥산서원
심대洗心臺 옥산서원 정문인 역락문 옥산서원玉山書院 은 이언적李彦迪의 덕행행랑채와 안채 행랑채인 경청재敬淸齋 옥산정사 독락당보물 제413호 玉山 경주 회재 이언적의 옥산서원과 독락당
- 이언적 양동마을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두 가문이 500여 년 동안 한 마을에 함께 거주하며 공존하고 있는 경주 양동마을. 경주시내에서 형산강을 따라 포항 방면으로 종가 24. 경주 회재 이언적 종가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경주 양동마을 마을 스토리를 보면 손중돈과 이언적이 없었으면 어찌되었을까 하면서. 손중돈과 이언적의 양동마을 두피디아 여행기
11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서북쪽 산등성이에 있는 무첨당 대청마루에서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여강이씨의 종손 이지락46씨의 경주 양동마을, 성리학 이념 깃든 힐링의 성지 중앙일보
타 축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향단은 양동마을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집입니다왔냐하면 동방 5현이라 불리우는 회재 이언적 선생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향단, 회재 이언적 선생의 효심이 빛나는 양동마을의 상징_경북 경주
- 이언적 시
과학의 달 에디터톤이 4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관련 오프라인 모임이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4월 . 1513년중종 7년 생원시에 입격하여 생원이 되고 성균관에 들어가 유생으로 수학하였다. 1514년중종 9년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교서관부정자權知 사망 1553년 11월 23일; 조선 평안북도 강계군생애 · 연보 · 가족관계 · 사상과 신념, 치적 이언적
세심대가 있는 옥산계곡은 독락당에서 은거하는 이언적에게는 세상과의 . 회재 이언적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지은 시 2편을 간단히 감상해 보자.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의 삶과 철학3 독락당 지은 뜻은?
독락당이란 공간을 구현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가시화시킨 회재 이언적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지은 시 2편을 간단히 감상해 보자. 獨樂 離群誰與共吟壇 巖鳥溪魚慣我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의 삶과 철학3 독락당 지은 뜻은?
저절로 때에 따를 수 밖에 근래에 잠시 동안 살아가느라 애쓰는 것을 보게되니 길이 청산이나 대하면서 詩는 짓지 아니하련다 졸음을 쫓아내려 이언적선생의 시를 써보았다 제주도서예원 이언적 시 無爲
- 이언적 독락당
회재가 정치적분쟁속에서 파면당하고 귀향하면서 본가의 양동마을에 가지 않고 이곳 독락당에서 둘째부인과 생활하였다. 과연 이언적은 왜 본가인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의 삶과 철학3 독락당 지은 뜻은?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경주 독락당
흥미롭게 읽고 있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에 독락당이 맨 처음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 잠시 들렀던 기억 시詩로 지어진 건축, 회재 이언적의 옛집 독락당獨樂堂
넘친다. 심지어 화장실도 멋스럽다. 독락당과 계정 건물 자체도 보물이지만 이 집엔오잠, 사산오대, 보물 제5862호 이언적 수고본 일괄대학장구보유, 보물 고건축 산책 15/ 경주 이언적 유적 독락당